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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고려학회 출판사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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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고려학회 회보

제10호(2003.3)

제5차 총회 개최
2002년 7월 19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1회 세계 코리아학 대회" 개최기간인 2002년 7월 19일, 대회장소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강당에서 국제고려학회 "제5차 총회"가 열렸다.

총회에는 세계 각국, 지역에서 모인 운영위원들과 회원들 약 60명이 참가하였으며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서로의 회포를 나눈 후 서울지회 사무국장인 최호철 교수(한국 고려대학교)의 사회로 총회에 들어갔다.

총회에서는 먼저 송남선 사무총장(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이 과거 5년 동안 국제고려학회 회장의 중책을 맡으신 강희웅 교수(미국 하와이대학)가 건강상 문제 때문에 총회에 참가할 수 없어 위임장을 제출하였다는 보고를 하였다.

이어서 본부사무국의 송재목 교수(오사카경제법과대학)가 제4기 국제고려학회 학술활동에 관한 보고를 하였다. 제4기 운영위원회는 2000년 2월부터 2002년 7월까지의 약 2년 반 동안에 본부, 지부 주최로 9번의 국제학술회의를 조직, 주최하였다. 회원들의 연구성과를 출판하는 부문에서는 본부에서 학회지 "국제고려학" 7호와 8호를 편집, 출판한 것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서 학회지 및 회보들을 편집, 출판함으로써 학회의 홍보와 회원확대에 기여하였다. 아세아분회에서는 북경지회와 흑룡강지회를 새로 설립하였으며, 2001년 12월에는 평양지부가 재건되어 새 임원진의 주도하에 실질적인 학회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이로서 국제고려학회는 남북코리아 및 해외에 지부를 갖는 국제적이며 균형잡힌 학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활동보고에 이어 최응구 상임고문(중국 북경대학)이 제5기 새 임원진 선출에 관한 제안을 하였다. 최고문은 제4기 운영위원회 결정에 따라 먼저 국제고려학회 본부 사무총장인 송남선 교수의 회장 취임을 제안하고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기타 임원진의 선출제안이 있었으며 총회 참가자들의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이어서 최고문은 이번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을병 원장과 조선사회과학원 태형철 원장이 국제고려학회 특별고문으로 취임하였다는 것을 총회참가자들에게 보고하였으며 참가자들은 박수로 환영하였다. 본부사무국 임원에 관해서 송남선 회장은 송재목 교수를 새로운 본부사무총장으로 임명하고 사무차장 및 본부사무국 구성에 관해서는 송재목 사무총장에 일임하기로 하였다(P.4).

총회에서는 2003년에 결성예정인 유럽지부 회원들이 참가하였으며 이들을 대표하여 Kieth Haward 교수(영국 런던대학)가 유럽지부의 준비상황보고를 겸해서 인사를 하였다.

새로 선출된 송남선 회장과 송재목 사무총장은 총회참가자들 앞에서 국제고려학회와 코리아학의 발전을 위하여 임기동안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회원 여러분들의 협조를 청하였다.

총회는 송남선 신임회장의 폐회사로 마무리되었으며 이로서 제5기 임원진이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회장 인사
보다 코리아학적인 것으로
송남선

회원 여러분.

지난 2002년 7월에 국제고려학회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유럽한국학회 및 호주한국학회와 공동으로 서울에서 개최한 "제1회 세계코리아학대회"는 국제고려학회의 존재의의를 온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더없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학회는 이제는 서울과 평양을 포함한 세계 다섯 지역에 지부를 가지는 세계 최대규모의 코리아학 학회로 성장하였습니다. 또한 세계대회 기간에 열린 국제고려학회 제5차 총회에서는 오랜 과제였던 유럽지부의 결성이 결정되었으며 영국의 옥스퍼드대학, 런던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의 선생님들이 임원으로 선출되셨습니다. 금년 중에는 유럽지부의 활동이 시작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크게 성장한 국제고려학회는 앞으로 코리아학을 발전시켜 나가는 담당자로서 그 내실이 더욱더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지면을 빌려 저는 국제고려학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자신이 느끼고 있는바를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제 의견이라기보다도 대부분 여러 회원들이나 선배들께서 말씀해주신 것을 대변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장을병 원장님께서는 코리아학 세계대회 개회사에서 한국학이란 밖으로는 조선반도에 있어서의 넓은 의미로서의 문화나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부터 파생하는 여러가지 현상들을 세계사람들이 이해하기 위한 지표가 되어야 하며, 안으로는 한국이 세계에 어떻게 보이는가 객관적으로 비쳐주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바로 정곡을 찌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리아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에 대한 이야기들이 간혹 제 귀에도 들려옵니다만 저 자신은 그런 이야기가 그다지 뜻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코리아학은 이것과 그것으로 이루어진다는 식의 필요충분조건이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코리아학이란 개념은 다양한 구성요건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러한 많은 요건을 채우는 극히 코리아학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기타 다양한 정도의 코리아학적인 것을 포함하는 프로토타입(원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코리아학이란 하나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지향성일 것입니다.

혹시 코리아학이 밖으로는 코리아를 이해하기 위한 지표, 안으로는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역사학, 정치학, 언어학과 같은 개별적인 과학과는 선을 긋는 지역학으로서, 코리아의 정치, 사회, 교육, 언어, 예술, 과학기술 등 다양한 현상, 즉 코리아란 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코리아학이 코리아란 현상의 전체적 파악과 이해를 위한 학문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접근법에 있어서 학제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전에 일본지부대표인 문경수 선생님께서 국제고려학회 일본지부통신 4호에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오늘 코리아를 둘러싼 현상 속에서 기존의 학문영역을 뛰어넘는 학제적인 사고와 협력 없이 적절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학제적인 시도의 하나로서 90년대의 코리아네스크에 관한 학문적 고양을 들 수 있습니다. 무엇을 코리아적인 것으로 보는가. 중국적이지도 않고 일본적이지도 않은, 코리아란 문화를 특징 짓는 키워드의 모색이 문학자, 예술가, 문화인류학자, 언어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의 공동작업에 의하여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 배경에는 경제적 요인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민주화를 실현한 한국국민들의 프라이드, 즉 냉전, 내전, 탄압, 투쟁과 같은 키워드 이외에도 코리아에 대하여 논해야 할 것이 있다는 한국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런 코리아학의 새로운 조류는 지난날 유럽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일본학이나 중국학의 부속물 같은 지위에 지나지 않았던 코리아학이 한국정부의 지원에 의해 독자적인 지위를 획득한 시기와 때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코리아학이 코리아란 현상의 총체적 이해를 지향하고 그 학제적 연구를 깊여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작업의 하나는 학문적 전문용어의 억제일 것입니다. 개별적 영역에서의 학문연구를 엄밀한 전문용어와 개념으로 구축한다는 것은 그 연구에 대한 반증성을 높여주는 것과 동시에 딴 영역과의 사이에 높은 벽을 쌓는 것이 됩니다. 어느 연구자가 코리아학의 모임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할 경우 될수록 딴 영역의 연구자들과의 교류가 가능한 언어와 문체를 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코리아적인 아이덴티티(정체성)란 응당 타자와의 비교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동시에 코리아학의 성과는 일본학이나 중국학, 동남아시아학과 같은 다른 지역학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지역학 간의 교환성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곧 연구성과를 표현하는 언어 문제에 직면합니다.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연구하는 사람들 모두가 능숙한 타언어 사용자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그러한 일은 앞으로도 실현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라고 안 바라고 간에 많은 연구가 영어로 발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개개의 연구자가 자기의 모국어나 숙련된 언어로 연구성과를 공개하는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코리아학의 국제성을 고려할 때 역시 학회로서는 될수록 많은 연구성과가 영어로 발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코리아학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마지막에 올리고 싶은 것은 현실주의적 접근법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연구자가 하나의 이론이나 모델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하여 그것을 코리아에 적용한다고 합시다. 이와 같은 연역적인 접근법은 학문연구로서는 충분히 타당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코리아학적인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이론은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상(事象)의 범위를 엄하게 한정하는데, 그 이론에 있어서의 우선적인 과제가 코리아나 코리아학의 당면한 과제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코리아나 코리아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론적인 테두리가 어떻든지간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에 대하여 우선 최상의 답을 낸다는 것입니다. 오해를 두려워 하지 않고 말하자면 코리아학은 방향에 있어서 절충적인 것임이 허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여러 요건이 한 명의 연구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드물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개개의 지능을 통합하는 기능으로서의 국제고려학회의 존재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학회는 이처럼 코리아학적인 것을 목표로 삼는데 있어서도 늘 지향적입니다. 국제고려학회는 앞으로도 계속 폭넓은 연구를 망라하면서, 동시에 보다 코리아학적인 것에 대한 강한 지향성을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고려학회 활동이 더더욱 주목을 받게 될 중요한 시기에 뜻밖에도 제가 회장이란 중책을 맡게 되어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지원을 진심으로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제5기 임원진

 

제5차 총회에서 이하와 같이 제5기 임원진이 결정되었다(밑줄은 신임).


◎ 고문단

특별고문: 장 을 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 태 형 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사회과학원 원장)

상임고문: 최 응 구 (중국 북경대학) 오 청 달 (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 강 희 웅 (미국 Hawaii주립대학)

고 문:

Mikhail N. Park (러시아 Moscow대학) Hao Bin (중국 북경대학) 안 병 호 (중국 북경대학)

Helga Picht (독일 Humboldt대학) 김 민 수 (한국 고려대학교) 타키자와 히데키 (일본 오사카상업대학)

◎ 회장단

회 장: 송 남 선 (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

부회장:

리 선 한 (중국 북경대학) ※아세아분회 회장 겸임 정 광 (한국 고려대학교)

문 영 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과학원) ※평양지부 회장 겸임 Edward J. Shultz (미국 Hawaii주립대학)

James Lewis (영국 Oxford대학)

◎ 본부사무국

사무총장: 송 재 목 (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 ※학회지 편집위원장 겸임

◎ 부회위원장

언 어: 김 진 우 (미국 Illinois대학)

문 학: 문 일 환 (중국 중앙민족대학)

역 사: Edward J. Shultz (미국 Hawaii주립대학) ※부회장 겸임

경 제: 고 병 운 (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

정 치: 문 정 인 (한국 연세대학교)

사 회: 문 경 수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일본지부 대표 겸임

철학·종교: 김 철 앙 (일본 조선대학교)

교육·체육: 손 계 림 (중국 동북사범대학)

문화·예술: 리 애 순 (중국 연변대학)

의 료: 김 영 일 (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

과학·기술: 고 태 보 (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

 

국제고려학회 제4기 학술사업 (2000.2-2002.7)

학술사업

<2000년>

2월 "제6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

주 최 : Hawaii대학 Center for Korean Studies, 오사카경제법과대학 아시아연구소,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국제고려학회

장 소 : 미국 Hawaii Honolulu

"동북아세아 평화와 발전 론단" 제1차 회의

주 최 : 아세아분회,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장 소 : 중국 해남도 참가자 : 17명

7월 서울지회 "제2회 전국학술대회"

장 소 : 한국 고려대학교 참가자 : 약 180명 논문 : 22편

8월

한자혼용에 관한 학술토론회

주 최 : 아세아분회, 중국조선어학회의 장 소 : 중국 연길 참가자 : 약 20명

11월 일본지부 "제5회 학술대회"

장 소 : 일본 오사카교육대학 참가자 : 약 90명

<2001년>

6월 국제심포지움 "격동하는 조선반도의 동북아시아"

주 최 : 일본지부 장 소 : 일본 오사카교육대학 참가자 : 약 90명

7월 "동북아세아 평화와 발전 논단" 제2차 회의

주 최 : 아세아분회,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장 소 : 미국 Hawaii 참가자 : 약 20명

서울지회 "제3회 전국학술대회"

장 소 : 한국 고려대학교 참가자 : 약 100명 논 문 : 18편

"조선족 중학교 교수용어와 관련한 토론회"

주 최 : 아세아분회, 중국조선어학회 장 소 : 중국 길림성 참가자 : 약 20명

11월 "20세기 조선민족무용 및 최승희 무용예술" 국제학술회의

주 최 : 문화예술부회 장 소 : 중국 연변대학 참가자 : 약 60명

<2002년>

7월 "제1회 세계 코리아학 대회"

주 제 : Embracing the Other : The Interaction of Korean and Foreign Cultures

주 최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유럽한국학회, 호주한국학회, 국제고려학회

장 소 :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참가자 : 약 520명 논 문 : 약 170편


출판사업

<2000년>

7월 일본지부통신 제13호 News Letter 제8호

9월 서울지회 소식 제3호

12월 아세아분회 회보 제3호 일본지부통신 제14호 서울지회 논문집 제2호(14편)

<2001년>

3월 학회지 "국제고려학" 제7호(12편) "제6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 자유논문발표 특집

7월 일본지부통신 제15호

9월 서울지회 소식 제4호

<2002년>

1월 일본지부통신 제16호

2월 서울지회 논문집 제3호(14편)

3월 "20세기 조선민족 무용 및 최승희 무용예술" 논문집(11편)

News Letter 제9호

4월 아세아분회 회보 제4호

7월 학회지 "국제고려학" 제8호(9편) 평양지부 창립 기념 특집호


조직사업

<2000년>

4월 아세아분회 혹룡강지회 창립 <임원진>지회장 : 리장수 부지회장 : 림국응, 림영만, 리홍규

7월 서울지회 제2회 총회 <임원진> 회장 : 홍윤표 부회장 : 강정구 사무국장 : 최호철

10월 아세아분회 북경지회 창립 <임원진> 지회장 : 리원길 부지회장 : 리룡해, 서영빈

11월 일본지부 평의원회, 제5회 총회 <임원진> 대표 : 문경수 사무국장 : 고용수

<2001년>

12월 평양지부 창립대회 <임원진> 회장 : 문영호 부회장 : 정창규 사무국장 : 리민우

<2002년>

1월 아세아분회 연변지회 설립 <임원진> 지회장 : 김호웅 부회장 : 정영진, 김강일

7월 "제5차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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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World Congress of Korean Studies
제1회 세계 코리아학 대회

2002년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제1회 세계 코리아학 대회"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는 국제고려학회(ISKS), 한국정신문화연구원(AKS), 유럽한국학회(AKSE), 호주아시아한국학회(KASAA) 등 코리아학 관련 주요 네 학술단체들이 공동주최하는 명실공히 세계대회로서 개최되었다.


이번 세계대회는 2000년 2월에 하와이에서 열린 "제6회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에서 당시 국제고려학회 회장이었던 강희웅 상임고문이 제안하였으며 그 후 2년여 동안의 준비를 거쳐 개최된 것이다.

대회에는 세계 20개국에서 발표자·논평자 185명을 비롯하여 총 520명이 참가하고 역사, 문학, 사상·종교, 예술·민속, 언어, 사회·문화, 정치·경제, 교육,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9가지 패널과 8가지 자유패널, 특별심포지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국제고려학회는 개최 결정 당초로부터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함께 대회 준비의 중심적 역할을 하며 세계대회의 실현을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또한 이번 대회에는 국제고려학회에서 송남선 회장, 최응구 상임고문, 송재목 사무총장, 홍윤표 서울지회 회장, 문경수 일본지부 회장을 비롯하여 총 60여명이 참가하여 초청강연, 특별발표, 논문발표·논평 등 대회 기간중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번 세계대회의 성과는 말그대로 세계 각국·지역의 코리아학 관계 학술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대회를 조직할 기본적인 테두리가 짜여지고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세계 코리아학 대회를 개최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자들의 참가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조선사회과학원과의 공동개최, 그리고 다음 대회의 평양 개최를 향하여 협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세계대회에 세계 각국에서 연구자들이 참가한 사실이 상징하듯이 코리아학은 그 연구과제의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더더욱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조선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정세 변화는 코리아학 학술교류가 지녀야 할 역할을 더욱더 증대시키고 있다. 세계대회가 제2회, 제3회로 착실하게 확대·발전해갈 수 있도록 국제고려학회로서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가야 할 것이다.


Panel, Program 등

 

참 관 기
제1회 세계 한국학/KOREA학/코리아학 대회 참관기
홍 윤 표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회장, 연세대학교)

2002년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에 걸쳐 서울의 성남시에 위치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코리아 문화 속의 외국문화, 외국문화 속의 코리아 문화'란 주제를 가지고 코리아학을 연구하는 전세계의 학자 약 5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코리아학의 큰 축제 한마당이 벌어졌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주관을 하였지만 이 학술대회는 국제고려학회(ISKS)와 유럽한국학회(AKSE), 오스트라아시아한국학회(KSAA)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대단위 학술대회였다.

국제학술대회란 전 세계의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발표하고 또 토론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대회의 가장 큰 의미는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7월 18일 아침에는 전세계 28개국과 국내에서 모인 학자들이 곳곳에서 얼싸안거나 악수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풍경부터 학술대회가 축제 분위기로 들어가고 있었다. 대회에 등록을 시작하면서 두터운 발표 논문집 세 책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에서 준비한 자료집들을 받으면서, 마냥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기조강연을 시작하고 학술대회가 공식일정을 시작하면서 그 분위기는 일신되는 것이었다. 즐겁던 분위기는 열띤 토론으로 상기되어 있었고,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가는 것이었다.

베르너 삿세(유럽한국학회장) 교수와 정해창(한국학대학원장) 교수의 기조강연과 타키자와 히데키(일본 오사카상업대) 교수와 김진우(미국 일리노이대학) 교수의 초청강연을 위시로 해서 지정패널 9개 분야(역사, 문학, 사상/종교, 예술/민속, 언어, 사회/문화, 정치/경제, 교육, 북한)에서 모두 87개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8개의 자유패널(세계는 한국으로 한국은 세계로, 언어접촉과 언어 변화, 한국어와 주변언어에 대한 비교 연구, 몽골 간섭기의 한국문화, 근세초기 한국의 외국과의 만남, 한국 식민지 시대에 관한 비교 분석, 한국적 문화가치와 종교, 한국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학제적 연구 1세기)에서 모두 35개의 논문이 발표되었으며, '한국학 비전 21'이란 심포지움에서는 2개의 주제 아래 4 개의 논문이 발표되어 모두 126 개의 논문이 발표되는 놀라운 과정이 벌어졌다. 그리고 필자와 미국 예일대학교의 전혜성 교수의 특별발표가 있었고, 각종의 문화행사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장서각 소장의 자료 전시회(조선왕실의 책)가 열렸고, 영화 '취화선'이 상영되었으며, 조선시대 선비의상 패션쇼가 열렸고, 민속 음악이 공연되었다. 물론 대회가 끝난 뒤에는 강화도 답사까지 이루어졌으니, 아마도 국제학술대회사상 양적인 면에서 이렇게 큰 학술대회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세계적인 기록이었을 것이다. 이 대회는 양적인 면에서만 그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코리아학에 대해서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온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했던 일이 없었을 것이다. 코리아학에 대한 대부분의 국제학술대회는 그 주제를 한정시켜 참석자들도 특별한 분야의 학자들이 대부분인 것에 비해 이 대회는 거의 전 분야의 학자들이 참석하였기에 그 의의는 더욱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재정적으로 충분하여서 외국에서 신청한 학자들을 모두 참여시켰다면 아마도 해외에서 최소한 200여명은 더 참석하였을 것이다. 예산상으로 100여분만 초청하기로 하였지만, 신청자는 300여 분이 넘어서 그 예비논문을 심사하는 데만도 거의 한 달이 소요되었고, 그래서 100여분만 공식적으로 초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논문집이 600질을 제작하였는데, 30여질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뜨거운 참여 열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내의 각 코리아학 관련 업체에서 후원물품이 전달되었는데, 동방미디어 이웅근 사장은 민족문화대백과사전 CD 150세트를 제공해 주었고, 누리미디어 최순일 사장도 고려사 CD롬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CD롬을 각 28질씩 보내 주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도 윈도 XP와 Office XP를 각각 28세트를 제공해 주었고, 문화부의 21세기세종계획의 결과물보급센터에서는 균형말뭉치 1,000만 어절을 입력한 말뭉치(corpus)와 한글맞춤법 및 방언 등을 검색하는 프로그램 각 100세트를 제공해 주어서, 많은 코리아학 학자들이 코리아학에 관한 엄청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자료의 공유는 특히 외국에서 코리아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사막에서 물을 만난 것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외국에서 온 어느 학자는 대회가 끝난 후에 필자의 연구실에 들려 더 많은 자료를 받아 가면서 이들 자료를 어떻게 항공편으로 가져갈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으며, 그것들을 모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꼼꼼히 메모하여 갔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논문 등의 업적물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던 학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어느 외국에서 온 학자의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대회가 언론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관련 학계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음으로써 한국학의 위상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국내의 국민들에게 우리의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는 커다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국제고려학회로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학계에서나 학자들이 그 존재를 미미하게만 인식하고 있었던 국제고려학회를 일약 중요한 연구단체로 부상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국제고려학회 서울 지회에 여러 문의가 있었던 것들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 문의 중에 이 학술대회가 1회로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열릴 것인지를 묻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다음에는 아마도 평양에서 개최될 가능성이 많다는 설명을 듣고는 매우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국내 학자들도 있었다.

아쉬운 점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북에서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참석을 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운 점이었다. 그리고 정년퇴임하신 원로 교수들로부터 꾸중을 들은 일이 있었는데, 초청장을 거주지로 보내지 않고 퇴임하신 학교로 보내는 바람에 늦게 통지서를 받아 참석하지 못하셨다면서 조직위원인 필자를 나무라실 때에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예산 때문에 2박 3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쫓기듯이 행사를 치른 점도 역시 한번쯤 고려해 보아야 할 일로 생각된다. 3박 4일 정도라면 훨씬 서둘지 않고 학술대회가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예산이 허락하지 않으니 이것은 꿈을 꾸는 것으로 족할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지난 7월의 그 가슴 벅찼던 기억이 내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다. 내년에는 평양에서 1회 대회 때보다 더욱 알찬 코리아 학술대회가 열려서 이 가슴 벅찼던 기억이 이어지기를 고대하는 마음 가득하다. 끝으로 이러한 국제학술대회가 이렇게 원만하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전적으로 국제고려학회 본부의 노력과 후원에 힘입었다는 사실을 알려 크게 감사 드린다는 말을 전한다.

 

"제1회 세계한국학대회"에 참가하여
연 재 훈 (국제고려학회 사무차장, 영국런던대학교)

지난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한국의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제1회 세계한국학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는 정신문화연구원 뿐만 아니라 국제고려학회(International Society for Korean Studies), 유럽한국학회(Association for Korean Studies in Europe), 호주한국학회(Korean Studies Association of Australia)가 공동으로 주최한 최초의 세계한국학대회였다. 학회를 양적인 면에서만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대회에 참가한 단체들과 회원들의 출신국가를 놓고 본다면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세계한국학대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질적인 면에서도 세계 수준의 한국학자들이 참석한 내실있는 대회였다. 열 개의 지정된 패널과 다양한 자유 패널에서 발표된 논문의 질과 참가자들의 수준은 최초의 세계한국학대회라는 이름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정신문화연구원의 장을병 원장님과 이길상 교수님이 큰 수고를 하셨음은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만치 않은 첫 세계대회를 무리없이 치르기 위해서 국제고려학회의 강희웅 회장, 유럽한국학회의 삿세 회장, 호주한국학회의 웰즈 회장 등이 거의 1년전부터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 송남선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오사카 경법대학팀들의 노고 또한 반드시 기억하고 치하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강희웅 회장님은 병 때문에 자신이 공들여 준비한 첫 세계대회에 참석하시지 못했다. 그 분의 쾌유를 빌어마지 않는다. 이번 대회의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북한의 학자들이 마지막 단계에서 참석할 수 없게 된 점이었다. 민족의 분단을 다시 한번 가슴아프게 생각하며 다음 대회 때는 남북의 학자가 세계 한국학 학자들과 함께 발표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화합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대회 기간 중에 국제고려학회의 새 임원진 선출도 있었다. 새 회장에 취임하신 송남선 교수와 새 사무총장이 되신 송재목 교수 두 분이 잘 협력하셔서 2년 후 더 멋있는 세계한국학대회를 마련해 주실 것을 당부한다. 이제 학회도 젊은 두 일꾼들의 봉사 아래 더 역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국제고려학회 유럽지부도 창설하기로 합의하고, 런던대학의 키스 하워드(Keith Howard) 박사가 유럽 지부장을, 필자가 사무총장을 맡기로 하였다. 옥스포드 대학의 제임스 루이스(James Lewis) 박사도 국제고려학회 부회장으로 취임하였으니, 기존의 유럽 회원들과 협력하여 유럽 지부의 창설과 활발한 활동을 우리 모두 기원해보자.

평양지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제관계법의 특징에 대하여 "

 2002년 11월 27일, 국제고려학회 평양지부 설립 1주년을 기념하여 학술회의가 개최되였다. 이번 회의는 평양지부가 처음으로 주최한 학술회의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학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약 300명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본부에서는 최응구 상임고문, 타키자와 고문, 문일환 문학부회위원장, 배룡 사무국차장이, 일본지부에서는 고용수 사무국장이 참가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2001년 12월에 출범한 국제고려학회 평양지부가 처음으로 주최한 학술회의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역에서 법학전문가들이 참가하였다. 인민문화궁전 원형대회의장의 정면에는 [국제고려학회 평양지부]의 큰 간판이 걸려있었으며 최응구 상임고문과 국제고려학회 관계자들, 조선사회과학원 부원장이 주석단에 앉았다. 한석봉 교수(국제고려학회회원, 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오전 9시반에 시작된 회의에서는 13명의 발표자들이 법 정비와 해석, 집행 등 현재 국내에서 거론되고있는 제 문제들에 대한 견해와 연구성과를 발표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해외 참가자들과 발표자들은 면담실로 자리를 옮겨 질의응답 및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 발표논문

1. 강성대국건설과 법 박철호(인민경제대학)

2. 경제관계법 개선완성을 위한 공화국의 립법활동 리방춘(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법제부)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외경제관계법들의 구성체계와 특성 안호식(김일성종합대학)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경제계획법과 그 의의에 대하여 독고일봉(인민경제대학)

5. 공화국에서의 대외경제거래와 법률봉사 김철준(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무역분쟁해결제도 전재룡(무역성)

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손해배상법]의 규제대상과 손해배상원칙 리청운(인민보안성 정치대학)

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준법교양체계와 그 중요특징 안천훈(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9. 우리 나라에서의 민사상 대리에 대하여 리영애(인민경제대학)

10. 공화국 외국투자보호제도에 대하여 강정남(김일성종합대학 법률대학)

1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저작권법의 중요내용과 특징에 대하여 리황(평양공산대학)

12. 공화국경제무역지대법규의 중요내용에 대하여 문철만(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13. 공화국해운법에서 주목되는 몇가지 문제 림영찬(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참 관 기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타키자와 히데키 (국제고려학회 고문, 일본 오사카상업대학)  

※국제고려학회평양지부가 주최하는 "경제법에 관한 심포지움"과 조선사회과학원 창립50주년기념식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국제고려학회 본부 대표들이 작년 11월 26∼3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을 방문하였다. 타키자와씨가 오사카경제법과대학 아시아연구소 정보지 "아시아포럼"에 기고한 방문기 "대동강의 푸른 물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여―"의 일부를 아래에 요약해서 소개한다.


이번 방문기간의 "공식행사"는 도착한 당일의 저녁식사모임 전의 환영인사와 국제고려학회 평양지부 주최 심포지움 개회식 및 조선사회과학원 창립50주년기념식전의 세 가지였다. 그리고 그것과 별도로 약 2시간씩 세번 진행된 전문가끼리의 좌담회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당초의 기대 이상으로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공식행사와 첫번째 좌담회에는 재일본조선인사회과학자협회(사협) 멤버들도 동석하였는데 나머지 두번의 좌담회는 국제고려학회 방문단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된 것이었다. 세번째 좌담회에서는 우리들도 두 개 그룹으로 갈라졌는바 중국에서 간 두 명은 문학·언어학, 일본에서 간 두 명은 역사학·고고학 학자들과 대화하였다.

세 번의 좌담회를 통해서 주로 발언한 것은 최응구씨와 나였다. 우리쪽 두 사람의 관심사의 핵심은 "북조선이 개혁·개방으로 나갈 가능성의 유무"에 있었던 만큼 그 점을 둘러싸고 상당히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심포지움에서는 질의응답 시간이 설정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웠으나, 경제법의 여러 분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발언된 내용은 우리가 이해하는 민법이나 상법의 상식과 겹치는 데가 많았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매우 흥미롭고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민사 차원의 분쟁 해결에 있어서의 변호사의 역할이나 이혼에 즈음한 재산 분여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여기가 진짜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사회인가"라는 의문을 느낄 정도였다. 혹시 "개혁·개방"(이 말을 북조선 학자들은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었지만)으로 나갈 준비가 조용히 진행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좌담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부정확한 전달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북조선 학자들의 의견도 있었음으로 여기에 구체적으로 쓰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특히 화제의 중심이 된 문제는 ①두만강 하구에 가까운 "라진·선봉" 에 이어서 얼마전에 결정된 "신의주", 머지않아 발표될 예정인(판문점에서 가까운, 즉 한국에서 지근거리인) "개성" 등의 〈경제특구〉의 발전 가능성, ②농촌에서 1996년부터 실시되어 온 "분조책임제"(분조는 협동농장의 말단단위. 잉여농산물의 자유로운 처분이 인정된 후 각지에서 농민시장이 성립되었음)의 효과와 현상, ③2002년 7월의 "경제개혁"의 성과 여부 등이었다.

북조선 학자들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와 자립적 민족경제의 원칙을 지킨다고 하면서도(뜻밖에도 이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들 사이에는 명백한 "온도차"가 있었다) 개혁의 성과가 기대한 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어디에 문제점이 있는가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또 대외관계의 조절과 <경제특구>에서의 외자도입을 위한 새로운 방책이 검토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실행될 것이다는 전망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특히 한국으로부터의 투자에 크게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남북수뇌회담에서 합의된 "경제교류추진"은 학자들 사이에서 이 정도까지는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조·일 양국의 근대사·현대사에 관한 좌담에서는 근년에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 이슈로 되어 있는 "식민지근대화론"과, "일본해" "조선동해"의 호칭 문제가 주된 화제로 되었다. 후자에 관해서는 "양국이 제각기 편리한 호칭을 쓰면 좋을 것이다"고 말하는 나와 "일본해"란 호칭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그들 사이에서는 끝내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이 문제에서는 그들도 내쇼나리즘과 관련된 화제가 되면 결코 타협하지 않는 한국 학자들과 같은 민족임을 새삼스레 실감했다는 것이 솔직한 인상이다. 하지만 "감정적 대립"으로 넘어갈 기색도 우려도 전혀 없었다. 나는 조금도 교만해지지 않고 예의를 지키는 그들의 태도에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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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지부


"재일코리안포럼" 개최


국제고려학회 일본지부는 2002년 11월 23일에 "제6회 학술대회", "재일코리안포럼"을 오사카경제법과대학 도쿄아자부다이 세미나하우스에서 개최하였다. 오전에 진행된 "제6회 학술대회"에서는 제1부 자유논제보고에서 2명이 발표하였다. 오후에는 재일코리안포럼 "재일코리안과 공공성"(재일코리안포럼 실행위원회 공동주최)이 개최되어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약 60명이 참가하였다. 김태명씨(오사카경제법과대학)의 사회 아래 제1부에서는 먼저 문경수 회장이 "재일조선인과 공공성의 논의에 앞서", 이어서 3명이 "NGO활동 현장에서의 관찰"이란 주제로 발표하였다. 제2부에서는 "재일코리안과 공공성에 대하여"란 주제로 4명이 발표하였다. 그 후 전체토론이 진행되고 활발한 의견교환이 벌어졌다..

 

"제6회 학술대회"

「中國延抯朝鮮族における韓國語使用をめぐる言語意識調査―若年層を中心に」 全永男(大阪大學大學院博士後期課程)

「韓國における儒敎·儒者の記憶と機能―朴正熙時代を中心に」 抯英浩(都留文科大學)

"재일코리안포럼"

<제1부> 孫明修(日韓市民스퀘어 共同代表) 金敬默(日本國際볼란티어센터 調査硏究員) 宋 悟(在日韓國民主人權協議會 共同代表)

<제2부> 洪貴義(立敎大學大學院法學硏究課 博士後期課程) 竹田 靑嗣(明治學院大學 國際學部 敎授) 山下 英愛(立命館大學 講師) 朴慶南(수필가)  

○ 제8회 평의원회, 제6회 총회 개최

학술대회 전날(11월22일)에 개최된 제8회 평의원회에서는 일본지부 임원진에 대하여 토의하였고 문경수 회장, 고용수 사무국장이 그대로 유임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또, 평의원은 2명이 퇴임하고 새로 2명이 승인되었다.

-신임 : 송재목(오사카경제법과대학, 국제고려학회 본부사무총장), 김태명(오사카경제법과대학)

11월 23일 학술대회에 이어 제6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평의원회에서 토의된 내용에 따라 문경수 회장이 2001년도 사업보고와 회계보고 및 2002년도 사업계획을 보고하고 전원일치로 채택되었다.


일본지부 각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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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분회

"민족어의 통일적발전과 언어정보산업표준에 관한 학술모임"

 아세아분회는 2002년도에 남북학술교류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행사를 추진하였는바 8월 3∼7일에는 국제고려학회 평양지부, 한국언어정보표준기술연구회와 3단체 공동주최로 "정보화시대에 따르는 민족어의 통일적발전과 언어정보산업표준에 관한 학술모임"을 중국·북경의 21세기호텔에서 개최하였다.

참가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문영호평양지부회장, 리민우사무국장, 정순기교수 등 10명, 한국에서 홍윤표서울지회회장, 박찬모교수, 최기선교수 등 17명, 중국에서 최응구상임고문, 리선한아세아분회회장, 전학석교수 등 5명으로 모두 32명이었다.

이번 학술모임은 먼저 8월 4∼5일의 이틀동안 학술발표가 있었다. 그 후 6일에는 참가자들 모두 북경중관촌첨단과학기술단지를 견학하는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세 나라에서 찾아온 참가자들은 밀도 높은 논문발표와 질의응답을 벌이는 한편 친숙한 분위기 속에서 교류를 깊이는 등 매우 유익한 나날을 공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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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회

임원진 개편


2002년 7월, 서울지회의 임원진이 이하와 같이 개편되었다.

 회장: 홍윤표(연세대학교) 부회장: 최광식(고려대학교) 사무국장: 박형익(경기대학교)

 감사: 송하춘(고려대학교), 김병로(통일연구원) 편집위원장: 이길상(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분과 부회장
총무이사
연구·편집 이사
사회 김귀옥
언어 김광해 이관규 임지룡

역사 최광식 정태헌 정태헌
경제·경영 윤기관 동용승 윤기관
정치 김승채 박한규 이성봉
사회 함인희 김병로
교육 한만길 민영오 김형찬

★ 서울지회 사무실 이전(2002.8)

새 주소: (120-070) 서울시 서대문구 영천동 69-121 201호

전화: 0505-921-9991 전자우편: koryohakh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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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도서 소개


『最初의 모더니스트 鄭芝溶』

사나다 히로코 저

1920년대부터 왕성한 시 창작 활동을 벌인 정지용에 대해서 김기린은 한국문단의 "최초의 모더니스트"라고 평가하였으나 문학사가들 속에서는 그의 작품에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자는 "정지용의 작품은 실제로 사상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문제제기하면서 그의 작품 세계를 추구해 간다.

정지용은 1902년에 충청북도에서 출생. 일본에 유학 간 시기에 쓴 일본어 시가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皛)의 칭찬을 받은 것을 계기로 문단에 올랐으며 해방후에는 이화여자대학 교수, 경향신문 주간 등의 중책도 역임했다.

저자는 한국, 일본, 구라파 등의 문학운동사에 관한 방대한 자료도 연구하면서 정지용의 작품과 삶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지용이 문학에는 사회성이 있어야 한다고 인식했었다는 점, 일제시기에 적어도 적극적인 친일시를 쓰지 않았다는 점, 또 한국어를 근대인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게끔 연마하였다는 점 등을 지적하여 그를 "민족문학 최대의 공로자"로 높이 평가한다.

그리하여 "문학 조류의 하나로서의 협의의 모더니즘을 도입했을 뿐만이 아니라 문학의 근대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뜻에서 정지용은 김기림의 말대로 '최초의 모더니스트'라 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작년 2월에 인하대학교 대학원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 「모더니스트 鄭芝溶硏究—日本近代文學과의 比較攷察을 中心으로」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서 출판한 것이다.

일본사람인 저자는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 후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여 작년에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한국문학의 세계에 깊숙히 파고든 노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K)

 

『타향살이』

고찬유 저

국제고려학회 회원이며 논픽션작가인 고찬유씨가 마이니치신문에 격주로 장기연재하고 있는 르포기사 "타향살이"가 한 권의 책으로 묶어져 마이니치신문사에서 간행되었다.

"타향살이"는 1999년에 판신판에서 연재가 시작되어 이제 5년째에 들어서게 된다. 처음에는 재일동포나 해외교포들의 실정 등을 보고하는 르포들이 씌여졌었다.

동 란은 2000년 11월부터 오사카판에도 실리게 된 것을 계기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재일동포들의 삶을 묘사하는 방향으로 면모를 바꾸었다.

이번에 출판된 책에는 지난 2년 동안에 게재된 인물 43명의 초상이 수록되어 있다. 프로복싱WBC세계슈퍼플라이급왕자인 홍창수선수, MK그룹오너인 유봉식씨, 영화 "밤을 걸어서"의 감독인 김수진씨, 국제고려학회회장인 송남선씨…스포츠, 비즈니스, 예술, 학술 등 다양한 쟝르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아온 사람들의 모습에 접해보면 뜨거운 감동이 가슴에 스며든다.

저자는 "맺는말"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1세는 차별과 빈곤에 시달리면서 가혹한 노동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2세는 1세의 등을 보면서 삶의 길을 모색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재일사회는 3세, 4세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다채로운 분야에서 자기 재능을 개화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더구나 일본뿐 아니라 남북조국, 심지어는 세계 각국에까지 나가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을 보니 감개무량하다."

책을 읽고나서 인상적인 것은 세대가 젊어지면 질수록 "재일"로 태어나서 자란 운명을 부(負)의 유산으로 느끼는게 아니라 오히려 유리한 조건으로 전환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책의 부제가 "재일하는 한국·조선인의 초상"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재일"이란 운명을 적극적으로 살려 보겠다는 등장인물들의 기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리라.

어떤 역경 속에서도 부단히 꿈을 향해 도전해 가면 능히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선구자들의 삶은 우리들 모두에게, 특히는 젊은 세대들에게 무한한 희망과 용기를 안겨줄 것이다.

『最初의 모더니스트 鄭芝溶』 역락출판사 2002년1월 발행

『타향살이』 마이니치신문사 2003년1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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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국제고려학회 본부사무국은 코리아학 연구에 필요한 도서와 자료를 연구단체나 개인들로부터 기증받고 있습니다. 2002년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과학원과 한국의 정신문화연구원으로부터 도서들을 기증받았습니다. 회원들은 본부사무국으로 오시면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